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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 in 양양

전통과 운명 사이의 비극, 『부서진 사월』

by 양양에살다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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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문학 거장, 이스마엘 카다레의 강렬한 울림

『부서진 사월』은 알바니아 출신의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Ismail Kadare)의 대표작이에요.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억압적인 공산 정권 아래서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국제적인 문학적 위상을 쌓아온 인물이에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언급되며, 동유럽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가 중 한 명이죠.

이 작품은 전통적 복수 관습 ‘카눈(Kanun)’을 중심으로,
알바니아 고지대의 현실을 정교하게 묘사한 문학적 보고예요.
짧지만 묵직한 이 소설은 운명과 인간의 자유, 사랑과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어요.


복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땅

소설의 배경은 알바니아 북부 고산 지대.
이곳은 수백 년간 ‘피의 복수’라는 전통이 지배하는 공간이에요.
‘카눈’이라는 불문율에 따라, 누군가를 죽이면 반드시 복수를 당해야 하고
피의 고리는 가문 대대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요.

주인공 지에(Gjorg)는 형의 복수를 실행한 직후부터 죽음을 예감하게 돼요.
관습에 따라 그는 한 달간의 ‘면죄 기간’을 부여받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역시 복수의 대상이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부서진 사월’은 그 한 달 동안의 긴장과 내면의 고통을 집요하게 따라가요.


감정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회적 운명

지에는 평범하고 온순한 청년이에요.
그는 복수를 원하지 않았지만, 가문의 명예와 전통 때문에 총을 들어야 했어요.
자신이 가해자가 되었고, 곧 피해자가 될 것을 알면서도
누구 하나 그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상황.

카다레는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의 무력함과 슬픔을 깊이 있게 조명해요.
자유로운 의지가 있더라도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현실.
그것이 이 작품을 단순한 개인 비극에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시켜줘요. 😞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빛나는 문장들

『부서진 사월』은 20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문장은 시적이고 상징이 가득해요.
카다레는 자연, 계절, 시간 등을 인물의 심리와 교차시켜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이끌어갑니다.

특히 ‘사월’이라는 달은 봄의 시작이자,
지에에게는 생의 끝을 상징하는 이중적 의미로 작용해요.
그 계절의 부조화가 바로 인물의 운명과도 맞닿아 있는 거죠.


사랑이라는 찰나의 위안

작품 후반부, 지에는 우연히 여행 중인 신혼부부를 마주쳐요.
여행 중인 여성은 지에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에도 처음으로 외부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돼요.

짧은 만남이지만, 이 장면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줘요.
지에가 처음으로 운명이 아닌 ‘자기 삶’을 인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마저도, 피의 관습 앞에서는 사치일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지금 읽어야 할 이유

  •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 명예, 관습,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인간
  • 자유와 의지를 꿈꾸는 젊은 영혼의 비극

『부서진 사월』은 알바니아라는 특정 지역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의 폭력’을 말해줘요.
사회와 개인,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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