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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 in 양양

🌀‘테레즈 라캥’과 ‘채식주의자’, 고요한 파괴 속 울림💥

by 양양에살다 202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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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조용한데…속은 폭풍 같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

숨 참고 버텼던 사람들이 있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던 저항.
『테레즈 라캥』과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여성들이 딱 그랬어요.
한 명은 살인을, 다른 한 명은 고기를 끊었을 뿐인데…
그게 그냥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
읽다 보면 점점 알게 됩니다. 음… 무서운데 또 묘하게 공감되기도 해요.

두 작품 다 읽으면서 “이거 나한테도 있는 이야기 아냐?” 싶었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냥 책 속에 있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아니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오늘은 이 두 작품이 어떻게 닮았고,
왜 지금 이 시대에도 다시 읽어야 하는지, 한번 털어보겠슴미다.


『채식주의자』는 처음엔 “고기 안 먹겠다고?” 정도의 이야기로 시작되쥬.
근데 점점 이상해져요. 말을 안 해요.
몸이 굶고, 정신이 부서지고, 결국엔 입원까지…
그 선택 하나가 가족과 사회를 뒤흔듭니다.

『테레즈 라캥』도 마찬가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테레즈가 갑자기 남편을 죽여요…😨
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걸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이건 단순한 욕망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쥬.

사실, 이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참 많아요.
둘 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살고 있고,
그 안에서 점점 무너져가요. 그리고 결국엔 ‘말 대신 행동’으로 폭발하쥬.

이건 그냥 개인의 이상한 선택이라고 보기엔…너무 무섭게 닮아있쥬.

1. 조용한 반란의 시작, 채식과 살인의 차이?

영혜는 갑자기 고기를 끊었고, 테레즈는 갑자기 남편을 죽였어요.
행동 자체만 보면 완전 딴판이쥬. 근데 그 밑바닥엔 공통된 무언가가 보여요.
그건 바로, 말로 표현되지 못한 억압이에요.
영혜는 “말” 대신 “몸”으로 말했고, 테레즈는 “욕망”을 넘어서 “범죄”로 나아갔어요.
이 둘은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이 결국 터트린 반응이었던 거쥬.

2.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침묵

둘 다 말이 없어요. 아니,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 하는 거죠.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 되니까.
그래서 더 무서워요. 조용한데… 그 침묵 안에 폭탄 하나씩 품고 있었던 거쥬.
영혜는 식욕을 버리고, 테레즈는 감정을 죽인 채 살아가요.
무섭게도, 이 둘의 침묵은 가장 강한 저항이었슴미다.

3. 구조가 만든 괴물, 개인은 죄가 있을까?

둘 다 죄를 지어요.
하나는 가족을 괴롭게 하고, 하나는 실제로 살인을 해요.
근데 여기서 궁금한 건, 과연 그들이 진짜 괴물인가 하는 거쥬.
아님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 가족, 시스템이 괴물인 건지…
졸라와 한강, 두 작가 모두 이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딱 잘라 말하진 않지만, 독자는 알게 돼요.
“이건 그 사람 탓만은 아니다…”

4. 민주주의 안에 숨겨진 위계

『채식주의자』에서 말하쥬.
민주주의라면서 왜 개인의 선택은 이렇게도 짓밟히는 걸까?
그녀는 단지 고기를 끊었을 뿐인데, 모든 사람이 그녀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요.
『테레즈 라캥』에서도 비슷해요.
결혼도, 가족도 다 테레즈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요.
민주주의는 있지만, 자기 결정권은 없었쥬. 그게 더 무서운 폭력 아닐까용?

5. 서로 다른 방식의 저항, 같은 파멸의 결말

영혜는 사라지기를 택했고, 테레즈는 무너짐을 선택해요.
하나는 내면으로 침몰하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터져요.
그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엔 둘 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던 거였슴미다.
어떻게 보면, 이건 그냥 살고 싶었던 이야기쥬.
근데 그게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사회 속에서… 참 슬픈 얘기죠ㅠ

6. ‘정상’이라는 틀, 누가 만든 걸까?

영혜는 이상했고, 테레즈는 나빴대요.
근데 그 ‘이상’과 ‘나쁨’은 누가 정한 걸까용?
그들이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그렇게 평가되는 거 아니었을까?
이 두 작품은 결국 말해요.
비정상은 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그렇게 몰아세운 구조가 아닐까 하고요.
그 메시지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심장을 탁 때리더라구요.

🤔 이 두 작품, 이렇게 읽어보면 어때요?

🔹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나요?”
👉 당연히 그럴 순 없쥬. 하지만 『테레즈 라캥』은 그런 도덕적 판단보다는,
왜 그 선택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범죄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도 그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영혜는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변했을까요?”
👉 말하지 못한 고통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몸’으로 나올 수밖에 없쥬.
『채식주의자』는 그걸 아주 날카롭게 보여줘요.
사람이 고통받는 걸 꼭 말로만 표현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용?

🔹 “두 작품 다 여성 얘기인데, 꼭 여성만의 문제일까요?”
👉 노노~ 절대 그렇지 않슴미다.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개인의 자유’와 ‘사회 구조’ 사이의 충돌을 다루는 작품들이라,
남녀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봐도 될 듯!


고요한 저항이 더 무서울 때가 있어요.
『채식주의자』의 영혜도, 『테레즈 라캥』의 테레즈도
큰 소리를 낸 적은 없지만,
그들이 남긴 울림은 지금도 우리 머릿속을 맴돌아요.

어쩌면 이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경고음일지도 모르겠쥬.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불편함,
그게 문학의 힘 아닐까 싶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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